내용전개:
27~30 제자들의 의문과 여인의 증거
31~38 그리스도와 제자들과의 대화
39~42 사마리아인들의 개종
 
Central Truth: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4:34)
 
Launching Question:  
여러분이 마법의 지니를 만났습니다. 이 지니는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당신이 원하는 한가지를 평생 끊이지않고 주겠다고 합니다. 무엇을 말씀하실건가요? 그 이유는요?
 
 
OQ1. 제자들이 돌아왔을때 무엇을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까? (27절)
- 예수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OQ2. 말씀속에 이 여자는 어떤 여자입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6~7절)
- 사마리아 여자이며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OQ3. 예수님의 양식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뜻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은 사명감당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순종 플러스 사명감당은 복음 전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음식에서 얻을 수 없는 포만감을 전도를 하시면서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둘을 자신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OQ4. 사마리아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39,41절)
- 여자의 증언을 듣고
-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IQ1. 예수님께서 이 여자와 말씀하시는것을 보고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 9절에 사마리아 여자가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달라는 예수님께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되묻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랍비 (또는 선생)가 여자와 담소를 나누거나 교육을 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유대인들은 사람취급도 안하는 사마리아여자와 얘기를 나누는 예수님의 모습은 사실상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더 놀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요? 찬송가 96장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 우리의 기쁨되심으로 우는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자의 높음, 잡힌자의 놓임되시며, 둘째, 우리의 생명되심으로 약한 자의 강함, 눈먼자의 빛, 병든자의 고침,죽은자의 부활되시며, 셋째, 우리의 평화되심으로 추한 자의 정함, 죽을 자의 생명, 죄인들의 중보, 멸망자의 구원되십니다. 마지막 넷째로 예수님께서는 온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되고 우리영광 되십니다. 4절의 가사안에 온통 낮고 아프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는 말씀 뿐입니다. 잘나고 많이 가진자를 위해 오셨다는 말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상식적인 행동을 통한 명예보다 불쌍한 한 영혼을 어두운 수렁에서 끌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손 잡아주신 이 사마리아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목말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인을 예수님께서는 정죄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것은 채워도 채워도 우리를 목마르게 합니다. 원 플러스 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만 보아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보다 더 근사한 것들을 더 많이 갖고 싶은 사람의 죄성은 변하지 않기때문입니다.
 
IQ2. 28절에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도 내팽개치고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합니다. 왜 갑자기 그런 돌발행동을 했을까요?
-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부를때 썼던 호칭의 변화를 살펴봅시다. 먼저 9절에 여자는 예수님을 당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저 평범한 한 유대인 남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여자인 자신을 무시하지 않고 얘기를 들어주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관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11절과 15절에서 "주"(=선생)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다섯 남편이 있었다는 숨겨진 과거를 알고 정곡을 찌른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예루살렘도 아닌, 사마라아여자의 조상들이 예배를 드리던 그 산도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지금이 그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산 = 그리심 산 = the mountain of Gerizim: 이 산은 오늘날의 에벨 에트 투르로서 해발 854.7에 달하며, 사마리아 성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중부 사마리아에 있다) 25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메시야가 올거라는 믿음이 있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고 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자의 입장에서 정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눈앞에서 본 여인은 물을 채워 마을에 가지고 돌아가야 할 물동이도 버려두고 사람들에게 들어가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너희도 만나러 가자고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입술로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이 우물가에서 만난 이 사람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시라고...이 사마리아 여자의 호칭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여자의 믿음이 점점 성숙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유대인은 누구길래 나한테 물을 달라는거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어떤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며 메시야이심을 밝히자, 그 기쁨을 혼자 주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알린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런 그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삶이 정작 목말랐던 이유에 대한 답을 깨닫게 되면서 비로서 예수님을 내 삶의 주로 모시고 그분안에서 참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담대하게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IQ3. 36절에서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그리고 38절에서 "너희"와 "다른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각각 누구를 가리킵니까?
- 여기서 "거두는 자"와 "너희"는 같은 의미이며 "뿌리는 자"와 "다른 사람"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좁은 의미로 "뿌리는 자"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사도요한을 비롯한 모든 구약시대 성도들을, "거두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넓은 의미로는 "뿌리는 자"는 신앙의 얼을 미리 심어놓고 간 예수님의 전 세대의 인물들을 가리키며, "거두는 자"는 이 복음을 전파해야하는 다음 세대들을 가리킵니다. 뿌려놓은 것을 단순히 거두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참여한다"고 하시며 이 복음사역이 계속 이어져야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36절에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 영생을 얻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전도를 하는 자, 전도를 받는 자 모두 영생을 얻고 하나님나라에 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은 상급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디모데후서 4장 6~8절에서 사도바울이 죽음이 가까웠을때 한 말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나라로 사람들을 인도한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한 자들로서 나중에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고한 것에 대해 세상사람들이 주는 보상이 적더라도 결코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IQ4. 어떻게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 여자가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했을때, 사마리아인들은 그 여자의 증언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과 이틀동안 머무르면서 직접 말씀을 듣고 더욱더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듣는것이 모든 믿음의 시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말을 시작하기전에 누구나 먼저 소리를 듣습니다. 말을 정확히 하기위해서는 많이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라서도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많이 들어야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여자의 진실된 증언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부터 예수님으로하여금 사마리아사람들과 이틀을 머물게 하시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하게 하신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그 사마리아 여인이 6시에 야곱의 우물에 오지 않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때에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인의 증언을 듣고도 그들의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 함께 있어달라고 간구해서 말씀을 들을 기회도 놓혔을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그들은 여자에게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을 앎이라"고 말합니다. 그들또한 사마리아여인처럼 내적체험을 통해 믿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짐을 보여줍니다.
 
Application Question: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양식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순종)과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사명감당)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삶속에서 (직장, 학교, 교회, 가정 등등) 순종하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 것 같습니까?
-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장녀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책임감있게도 못산거같구요. 그래서 예전의 부지런한 모습을 찾기위해 요즘 다시 일도 시작하고 곧 운동도 하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마음밭인거 같습니다. 사실 일과 운동은 누가봐도 저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요. 예수님께서도 육의 아버지 요셉에게 최선을 다해 잘 해드렸다고 하는데 전 부모님과 너무 가깝다보니 가끔 그 선을 넘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안그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직장에서는 늘 처음에는 엄청 순종적이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잔머리를 쓰는것같습니다. 특히 동료들이 열심히 안하면 저 혼자 손해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목사님께서 설교해주신 말씀처럼 늘 사명감을 가지고 보상심리가 아닌 보답심리로 일하는것이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 학교에서는 사명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제가 잘하는 분야에서만 지극히 순종적으로 열심히 하는것같습니다. 제가 못하는 과목은 공부도 열심히 안하고 교수탓만 했던것같습니다. 학생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 교회에서는...아직도 많은 순종과 사명감이 필요합니다. 원래 아주 친한사람 아니면 잘 안만나는 성격탓도 있지만, 아마도 교회안에 사람이 많다보니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할꺼야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거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일에는 순종의 결단이 느렸던 것 같습니다. 아마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순장으로 섬기게 하신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순장으로 섬긴지 이제 두달도 채 안되었지만, 예전 저희 셀장언니들이 얼마나 저때문에 힘들었을까 지대로 느낍니다. 목장모임에 토비새에 순모임준비, 그리고 순원들 기도까지...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매주 모임을 준비하셨는데 제가 셀모임에 빠졌을때 얼마나 힘이 빠지셨을까 생각해보니...참 많이 많이 죄송했습니다.